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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이거즈

KIA 김호령 FA, 왜 팬들은 그를 사랑할까? 2016년부터 지켜본 김호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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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령은 KIA 타이거즈 외야수다.

1992년생, 2015년 신인드래프트 2차 10라운드 전체 102번으로 지명됐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있다.

김호령보다 뒤에 지명된 선수들이 대부분 대학 진학을 선택하면서, 사실상 2015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프로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김호령이었다.

그렇게 10라운드, 전체 102번으로 프로에 들어온 선수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느냐.

답은 간단했다.

수비.

김호령은 정말 수비 하나로 프로에서 살아남은 선수였다.

그런데 KIA 팬들은 왜 이런 김호령을 그렇게 좋아하고, 왜 그렇게까지 응원할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김호령을 좋아하게 된 2016년 와일드카드

2016년 KIA 타이거즈는 LG 트윈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렀다.

첫 번째 경기에서 오지환의 결정적인 수비 실수가 나왔고 KIA가 승리했다.

당연히 나도 현장에 있었다.

그날 잠실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기억난다.

KIA 팬들이 지하철 입구를 빙 둘러싸고 LG 팬들에게 조롱 아닌 조롱을 하면서 KIA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거기에 오지환 응원가까지 BGM처럼 깔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된 짓인데, 당시에는 나도 그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신났다.

2016년에는 지금처럼 와일드카드에서 업셋을 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KIA가 와일드카드를 이기고 올라가는구나.

가을야구를 하는구나.

혹시 여기서 더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그 들뜬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 날에도 나는 경기장에 갔다.

0대0인데 계속 불안했던 경기

두 번째 경기는 이상하게 계속 불안했다.

스코어는 0대0이었다.

그런데 경기 내용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LG 공격은 계속 매서웠고, KIA는 선수들이 허슬플레이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막아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LG는 계속 득점권에 주자가 나갔고 KIA는 제대로 된 득점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다.

나는 혹시나 한 방이 터지지 않을까 싶어서 두 손 모으고 기도하면서 경기를 봤다.

그런데 9회까지 KIA의 득점은 없었다.

그리고 9회말.

LG 공격.

1사 만루.

그때 나는 정말 작은 희망을 품었다.

'이것만 막으면 된다.'

'이것만 막고 연장 가면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로 뜬공이 떴다.

그리고 내가 그날 직접 본 장면이 나온다.

김호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호령이 끝까지 공을 쫓아갔다.

그리고 잡았다.

잡은 뒤 바로 홈으로 송구했다.

그 장면을 나는 현장에서 직접 봤다.

물론 3루 주자는 태그업을 했고 득점에 성공했다.

KIA의 패배였다.

경기는 끝났다.

그리고 나는 전날 KIA 팬들에게 조롱당하며 집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이번에는 LG 팬들의 조롱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LG 팬들이 지하철 입구를 감싸고 응원가를 부르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전날의 LG 팬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눈물이 나더라.

졌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호령이 미웠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플레이한 김호령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혼자 다짐했다.

'앞으로 5년 동안 네가 실수를 해도 욕하지 않겠다.'

'한 경기 말아먹어도 욕하지 않겠다.'

'본헤드 플레이를 해도 그냥 넘어가겠다.'

그렇게 김호령은 나에게 특별한 선수가 됐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 김호령은 못했다

문제는...

김호령이 정말 못했다.

수비는 좋은데 타격이 안 됐다.

팬들 사이에서는 늘 이런 희망고문이 있었다.

"2할 5푼만 쳐도 주전인데."

누가 김호령한테 3할을 바랐겠나.

홈런을 바랐나.

30도루를 바랐나.

그냥 2할 5푼만 쳐주면 됐다.

수비는 원래 잘하니까.

그런데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김호령을 계속 응원했다.

2016년 그날 잠실에서 본 모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024년 KIA 우승 때 김호령은 없었다

그리고 2024년.

KIA가 정규시즌을 우승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결국 KIA는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했다.

그런데 김호령은 그 우승 엔트리에 없었다.

정규시즌이 끝난 뒤 개인 타격 훈련을 하다가 왼쪽 내복사근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그렇게 짜증이 났다.

아니 김호령아.

누가 너한테 타격 잘하라고 했냐.

누가 장타 치라고 했냐.

안타 많이 치라고 했냐.

너는 7회 이후 대수비로 들어와서 중견수 쪽으로 날아오는 공이나 잘 잡으면 되는 선수인데.

그걸 훈련하다 다쳐서 한국시리즈를 못 나가냐고.

물론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호령아, 우승반지 하나 더 끼면 좋잖아."

얼마나 잘 치겠다고 훈련하다가 다쳐서 코시를 못 나가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김호령이 이렇게 잘할 줄은.

"2할 5푼만 쳐줘"가 현실이 됐다

내가 김호령에게 바라던 건 정말 별거 아니었다.

2할 5푼만 쳐줘.

그런데 김호령은 2025년 타율 2할 8푼3리를 기록했다.

장타율도 4할을 넘겼다.

그렇다고 원래 장점이었던 수비가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주루가 망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팬들이 그렇게 바라던 '수비는 그대로인데 타격까지 되는 김호령'이 나타난 것이다.

참 사람 일 모른다.

10라운드 전체 102번으로 시작해서 수비 하나로 살아남은 선수가 어느 순간 타격까지 해주기 시작했다.

이제 김호령은 FA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제 김호령은 FA를 앞두고 있다.

올해 연봉은 2억 5천만 원.

FA를 앞둔 만큼 일종의 방어값이 섞인 연봉이겠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억대 연봉 선수다.

그리고 얼마 전 야구를 보다가 이상한 장면을 하나 봤다.

예전에는 내가 익숙하게 보던 장면이 있었다.

7회쯤 김호령이 대수비로 들어오는 것.

'아, 이제 호령이가 들어오는구나.'

그게 너무 익숙했다.

그런데 어느 날 김호령이 7회에 체력 안배를 위해 빠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야구를 너무 오래 봤구나.

김호령이 어느새 그런 선수가 되어 있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선수는 결국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사람이고, 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용규도 그랬고,

안치홍도 그랬고,

최원준도 그랬고,

최형우도 그랬다.

KIA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그냥 내 새끼였다.

내 팀에서 잘하면 좋고, 다른 팀으로 가면 그 순간부터는 상대 선수일 뿐이다.

그런데 김호령은 조금 다르다.

김호령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애석할 것 같다.

아마 다른 팀에서 뛰는 걸 보면 계속 눈에 밟힐 것 같다.

그래도 FA라면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게 맞다

그렇다고 KIA가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프로선수에게 FA는 인생에서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다.

KIA가 적게 부르고 다른 팀에서 훨씬 많은 금액을 제시한다면?

당연히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게 맞다.

특히 김호령처럼 오랫동안 팀을 위해 뛰어온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화가 됐든 어디가 됐든 돈 많이 주고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이 있다면 그걸 선택하는 게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제발 한화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올 시즌이 끝나고 12월에 장가를 간다고 하는데, 제발 처가가 대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처가가 대전이면?

집 구하기도 편하고.

생활하기도 편하고.

운동에 집중하기도 편하고.

한화에서 돈까지 많이 부르면?

이거 아무래도 가버릴 것 같다.

그러니까 제발.

처가가 대전만 아니길 바란다.

김호령의 마지막 KIA 시즌일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올해가 김호령이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시즌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2016년 잠실에서 끝까지 공을 쫓아가던 수비 하나 때문에 마음속으로 응원하기 시작한 선수가,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FA를 앞둔 선수가 됐다.

그동안 잘했던 날도 있었고 못했던 날도 있었다.

2할도 못 치면서 답답하게 만들었던 날도 있었고,

"그래도 수비 하나는 진짜..." 하면서 계속 응원했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2할 8푼을 치는 선수가 됐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2할 5푼을 훌쩍 넘었다.

참 늦게도 잘했다.

그래서 더 아쉽다.

나는 김호령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모습을 아직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에게 FA는 냉정한 현실이다.

돈을 많이 주는 팀이 있다면 가는 게 맞다.

그걸 막을 생각도 없다.

다만 KIA 팬으로서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올 시즌이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

김호령.

당신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그 열정,

2016년 잠실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을 쫓아가던 그 모습을

이번 시즌에는 더 많이 눈에 담아두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정말 다른 유니폼을 입게 되더라도,

당신만큼은 조금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KIA 타이거즈의 김호령.

나에게는 그냥 수비 잘하는 외야수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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